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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별 음악듣기
 
 

     
         

 

바그너는 독일에서 경찰인 아버지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바그너가 태어난 지 정확히 6개월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후 어머니는 다시 다른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바그너의 새아버지는 연극배우, 가수, 화가, 시인이라고 불리 우는 예술방면에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그너의 새아버지도 8살 때 돌아가셨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스레 바그너는 그런 새아버지의 영

   
 

 

향을 많이 받고 자랐죠.

꼬마 바그너가 처음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베버의 '마탄의 사수'라는 곡을 듣고 나서입니다. 그 곡을 드레스덴 극장에서 듣고 나도 지휘자가 되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13살 때 바그너는 음악 뿐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책을 많이 읽고, 이 시기의 영향을 받아서 학교를 다닐 때 연극도 만들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음악과 문학을 다 좋아했던 바그너는 주로 오페라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할 때 듣는 곡은 바로 바그너의 로엔그린 중에 나오는 곡이랍니다.

하지만 바그너는 대학에서는 별로 좋은 학생은 아니였습니다. 니콜라이 학교와 토마스 학교를 다녔지만 결국 중간에서 학교를 그만 두었죠. 하지만 그 후 정말 운이 좋게 토마스 교회의 합창 지휘자를 만나 이때부터 진지하게 음악공부를 하게 됩니다. 또한 대학입학시험을 보지 않고서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죠.

바그너는 국왕 루드비히 2세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돈걱정을 안하면서 안정적인 작곡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왕이 바그너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국민들의 반감을 사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고 하네요.

바그너는 병으로 죽은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병도 없었고, 강철과 같은 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작곡을 할 때는 긴장을 너무 해서, 신경질환에 걸리곤 했습니다. 또한 시끄러운 소리를 못 참아하고, 색깔이나 냄새에도 반응이 심했다고 하니, 강철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몹시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바그너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명확합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요, 바그너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바그네리안' 이라고 부르죠.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은 정말 꿈결같다.' 고 말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건 음악이 아니다.' 라고 무시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음악가들의 평에 비해서 무척 극단적인 의견이죠?

바그너의 대표곡
니벨룽의 반지,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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